[로컬 라이프]콜랙티브 강원 [예술가의 사무실 : Work & Art] 전시회를 가다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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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0일 송정 해변을 마주한 아비오 호텔에서 더웨이브컴퍼니가 주최하고 강원창조혁신센터가 지원한 [예술가의 사무실 : Work & Art]가 열렸습니다. 강릉에서 활동 중인 4명의 로컬 크리에이터가 참여한 이번 전시회는 단순히 작가의 작품만을 선보이는 것 이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오후 5시부터 진행된 전시회에서는 제목처럼 '예술가'로서의 '작품'과 '직장인'으로서의 '작업' 사이에서 작업실이자 사무실인 예술가들의 공간이 어떻게 보이는지, 특별함과 일상을 넘나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네 명의 작가는 송정 해변의 솔숲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객실을 각각 배정받아 자신의 사무실을 꾸몄습니다. 3층에는 일러스트를 그리는 정언호 작가, 4층에는 사진과 영상을 작업하는 김요한 작가, 5층은 강유진 작가가 워케이션 가구와 소품으로 공간을 꾸렸고, 6층에는 김소영 작가가 서예와 캘리그라피 작품과 작업 도구를 중심으로 전시공간을 준비했습니다. 

지난 20일 오후 5시, 전시장인 아비오 호텔에 도착해 로비와 워케이션이 가능한 팝업스토어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습니다. 3층에 내려 복도를 따라가니 '예술가의 사무실'이라고 쓰인 포스터가 관람객을 반겼습니다. 



정언호 작가(일러스트, 3층 전시실) - 「쉼과 작업의 경계를 없애다」

정언호 작가는 옐로우 오우커톤의 목재 가구를 중심으로 큰 틀을 잡았습니다. 책상과 의자, 야외에서 작업할 때 유용한 캠핑선반, 오랜 시간 작업을 도와줄 각도조절 보조 책상과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포스터를 비롯해 그가 작업한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캠핑, 서핑 등 그가 평소 좋아하면서도 자주 그려온 '방구석 여행' 시리즈의 작품과 굿즈였습니다. 일과 휴식의 경계를 그리기보다 두가지 모두를 병행하며 예술가로서의 행복감을 높이고 있다는 지난 인터뷰 내용처럼 평소 그가 좋아하는 여행과 서핑, 취미와 업무가 전시실에 한데 모여있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여행지로 떠나지 못하는 요즘, 그의 그림을 통해 마음속 소풍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와 함께 해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을 주는 칵테일 키트도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정 작가는 "여행지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칵테일 키트입니다. 제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패키지까지 만들어서 그런지 더 정감이 가요. 몰디브에서 모히또를 마시진 못해도 일하다 쉴 때 달콤한 칵테일을 마시면, 그 순간 일하는 곳이 휴양지가 되죠"라고 말했습니다. 

전시실 곳곳에 있던 작품과 보드, 바다와 맞닿은 창문 근처에 걸려 있는 비치타월과 모니터 속 작업물까지 자유로움 속에서 일과 쉼, 사무실과 작업실의 경계를 허무는 작가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일러스트는 3층 창밖에 보이는 송정 해변의 솔숲과 어우러져 포근함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정언호 작가 인터뷰 바로가기)



김요한 작가(사진·영상, 4층 전시실) - 「예술은 로컬과 대화하면서 만들어내는 한 편의 영화다」

3층을 둘러보고 4층에 있는 두 번째 전시실, 김요한 작가의 방을 방문했습니다. 문을 열며 반갑게 관람객을 맞이하는 김 작가의 모습 뒤로 그를 닮은 그림과 'Local’s 제2작업실'이라는 족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포스터를 보지 않았어도 누구나 '이곳은 모자를 눌러쓰고 작업하는 예술가의 세컨 오피스구나'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입구에 있는 '로컬'이라는 글자만큼 그의 작품들은 강릉이라는 지역과 콜라보를 통해 만든 작품이 주를 이뤘습니다. 로컬 뮤지션과의 작업, 로컬 플레이스의 재발견 등, 작가 특유의 생동감 있는 영상과 사진 속에 묻어나왔습니다. 전시실을 방문한 시각에는 일전 인터뷰에서 언급한 서부시장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김 작가는 관람객이 영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커튼을 쳤습니다. 밖에 보이는 외부 모습과는 차단됐지만. 그의 영상을 통해 로컬의 모습과 이미지가 전달되고 있어 이채로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왼쪽에는 그가 실제 사용하는 카메라를 비롯해 마이크 등 여러 장비가 세팅되어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과 장비, 그동안 활동한 이력을 보여주는 배지 등을 통해, 협업을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예술관을 알 수 있었습니다. 김 작가는 이전 인터뷰에서 했던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덩그러니 풍경만 있는 공간을 찍는 걸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사람(人)과 사람(人)사이에서 인간(人間)관계가 생기듯 장소에 사람이 있을 때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처럼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안쪽에 있는 욕실 공간에 구현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 출력할 수 있는 장소를 구현해 평소 생각하던 소통을 구체화하기도 했습니다. (김요한 작가 인터뷰 바로가기)



강유진 작가(워케이션 공간·가구, 5층 전시실) - 「Mr. Gray, 당신이 이 공간의 주인공입니다」

한층씩 올라갈수록 창밖에 보이는 송정 바다의 모습도 달랐습니다. 그리고 같은 크기와 구조에서 각자의 특색을 최대한 끌어올린 예술가들의 사무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세 번째 전시실, 5층에 있는 강유진 작가의 공간은 말 그대로 '공간',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된 느낌을 주었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사무실이 예술작업을 하는 작업실 느낌이 조금 더 강했다면 강 작가의 전시실은 호텔과 한가지 톤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그는 관람객에게 '미스터 그레이(Mr.Gray)'라는 캐릭터를 부여해 전시실이자 쉼터인 이 공간에서 시간의 변화와 일의 진척에 따라 그려지는 모습을 워케이션 가구와 소품으로 구현했습니다. 창밖이 보이는 곳에 설치된 테이블에서는 독서와 바다 풍경을 보며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고, 테이블에서는 소파에 앉아 편히 잔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 모습이었습니다. 욕실을 비롯해 전시실 이곳저곳에는 일과 휴식 모두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그레이피스의 오피스 전용 옷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침대에도 간이 책상이 설치돼 있어 편하게 누워서 업무를 확인할 수 있는 구성이 돋보였습니다. 지난 인터뷰에서 "LP 플레이어에 LP판을 올려두고 노이즈부터 노래, 그리고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온전히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모든 과정이 일하고 힘든 와중에도 저를 챙기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라고 했던 것처럼 LP 플레이어를 들으며 일과를 마무리하고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과정까지 담고 있었습니다. (강유진 작가 인터뷰 바로가기)



김소영 작가(서예·캘리그라피, 6층 전시실) -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가 예술이다」

마지막으로 김소영 작가의 전시실을 방문했습니다. 가장 높은 6층에 있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넓게 펼쳐진 강릉 바다에서 시선을 안으로 돌리니 작가의 책과 작품, 그리고 붓과 붓걸이, 먹과 문진 등의 작업 도구가 한눈에 보였습니다. 글씨당에서 보았던 거의 모든 작품과 작업 도구를 그대로 옮겨와 새로운 '글씨당'을 만들어 놓은 모양새였습니다. 



큰 붓을 들고 한복을 입고 있던 김 작가는 "여기 커피가 맛있네요. 작업하기 전에 마시기 좋은 거 같아요"라며 캡슐커피 한잔을 건넸습니다. 다른 작가와 달리 작업 테이블이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평소에는 테이블 앞에 서서 작업하기도 하지만, 퍼포먼스를 할 때는 바닥에 종이를 펴고 글을 씁니다. 어디에서든 붓을 들고 글을 써 내려가면 거기가 글씨당인거죠"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관객과 호흡하는 과정 전체가 퍼포먼스'라고 언급한 인터뷰 내용처럼, 전시실에서도 관람객에게 그 자리에서 글을 써 드리고 있었습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컴퓨터와 노트북이 함께 있는 모습은 작가가 말했던 작품이 나오기까지 자연스럽게 영감을 얻고 작업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전체 과정을 들여다보는 듯했습니다. '예술과 일, 비즈니스와 소통이 따로 있지 않다'라고 했던 작가의 가치관이 담겨 있었죠. 차와 커피뿐만 아니라 전시공간 한편에 있던 강릉 소주와 버드나무 맥주의 모습은 예술과 일 안에서 새로운 쉼을 생각하고 싶다는 작가의 새로운 방식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소영 작가 인터뷰 바로가기)


모든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서 내려가는 길에 '일상이 작품이 되는 곳', '객체가 주체가 되는 곳'이라는 전시회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술가의 작품과 직장인으로서의 업무, 그리고 사람에게 필요한 쉼을 균형 있게 가져가는 작가들의 모습을 통해, 새롭게 일과 휴식, 예술과 로컬의 모습을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글 = 변준수

사진 = (위로 부터) 정언호, 김요한, 강유진, 김소영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