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라이프][예술가의 사무실 : Work & Art 작가 인터뷰] '찰나와 영겁 사이의 사람을 담는다' 코리아 이미지 김요한 작가

20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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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호랑이를 가리켜 산신, 산군(山君)으로 불렀습니다. 산군은 말 그대로 산을 지배하는 임금을 말합니다. 어떤 한 지역이나 조직, 시스템을 온전히 파악하고 이끌기 위해서는 여러 요소가 필요합니다. 확고한 목표와 비전이 있어야 하고, 조직과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군림하는 게 아닌 공유와 상생을 통해 화합을 이끌어야 하죠. 

강릉에서 코리아 이미지와 시각예술그룹 크리에이티브(Creative) 1230을 이끄는 김요한 작가는 면밀한 계획과 기존의 편견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모습이었습니다. 대관령을 지키는 대호의 모습과 닮은 느낌이랄까요. 지난 8일 저녁 제비리 1230번지의 스튜디오에서 '호랭'이라는 별명처럼 산군의 모습으로 예술과 작업을 이어가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예술활동, 일 외에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해시태그

#운동 #음악 #코닥_협찬을_기다리는_중



흔히 위트있고 기존의 편견을 비트는 작품이나 영상을 만드는 경우,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 세간의 기준을 넘나들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편이신가요?

김요한 작가(이하 '요한') : 저는 한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의뢰를 받건, 작가로서 작업하던 양보하지 못하는, 협업과 소통을 해서라도 맞춰가는 부분이죠. 바로 영상의 완성도와 퀄리티입니다. 강도 높게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이기도 하죠. 의뢰받은 것 역시 고객과 이야기를 통해 더 나은 품질로 만들려고 합니다. 결국, 제가 좋아야 편집할 때도 신이 나고 만족감이 드는 법이니까요. 상업 영상이건, 예술성을 강조한 작품이건 완성도와 품질은 어디서나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렇다 보니 홀로 다루기 힘든 장비를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죠. 요즘 1인이 촬영·편집하기 편한 장비가 많지만, 제가 쓰는 장비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 다룰 때 더 나은 효과를 내는 것들이 많습니다. 같이 하는 작업 과정에서 강점을 발견하고 노하우가 쌓이면서 더 성장하고 있습니다. 

'선을 넘는다'.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강릉에도 대형 프로덕션이 두세 군데 정도 있습니다.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결국,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접근이죠. 발상의 전환과 클라이언트의 니즈 사이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 결과들이 지금 저를 만들었습니다. 



예전에 작업했던 영상 가운데 서부시장 홍보 영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강릉이라는 공간이 작업할 때 주는 특별한 느낌이 있나요?

요한 : 저는 회사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강릉에 머물렀습니다. 여기서 태어났고요. 서부시장은 사업자 등록을 하고 처음 사무실을 낸 곳이기도 합니다. 층고를 높이 마련해 다양한 촬영이 가능하게 스튜디오를 구성하고 싶었지만, 서부시장은 천정이 낮아서 그 부분을 반영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위치로 자리를 잡게 되었죠. 

서부시장 영상 촬영제의를 받았을 때 교육 목적이 포함된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관계자, 시민들에게 촬영 과정을 설명하면서 작업을 이어갔죠. 크리에이티브 1230 크루 멤버들에게도 좋은 교보재가 되었습니다. 스토리와 결과물을 구성할 때 머리를 맞대고 했죠. 서부시장 촬영물은 처음에 숏필름 형태로 해서 영화처럼 만들려고 했습니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모습, 화기애애한 상인들과 소비자의 대화 같은 뻔한 장면 말고 이 공간을 다양하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고 미국의 할렘 같은, 어두우면서 디스토피아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상인회의 허가를 맡고 촬영 때 불을 껐는데 이를 고지받지 못한 상인분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죠.

영상에 나오는 '신호를 발견했다'라는 대사도 원래는 '신호가 없다'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날 비가 오고 나서 하늘이 맑은 데다가 밝게 조명이 켜져 있어서 상황을 조금 바꾸었죠. 서부시장을 배경으로 5편 정도를 더 찍고 싶습니다. 영화 <타짜> 콘셉트로 화투를 치는 상인들의 모습을 담는 방식처럼요. 

서부시장을 벗어나 강릉으로 이야기를 넓힌다면 조금 느낌이 다른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운 공간이 많은 강릉에서 음악영화를 촬영하고 싶습니다. 영화 <원스>에서 존 카니 감독이 더블린을 다룬 느낌처럼 좋은 로케이션과 사람, 음악이 더해진 강릉만의 음악영화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전통적인 부분이 잘 남겨져 있습니다. 다만 이를 항상 그 모습 그대로, 해왔던대로 답습하는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존에 있던 레퍼런스를 비틀거나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단오제 때 했던 시시딱딱이나 힙합과의 접목도 여기서 출발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예술성과 상업성, 대중성, 사진과 영상에 있어서 이러한 요소들을 같은 선상에 있는 거라고 보시나요?

요한 : '다르다'라고 할 수 있는 정확한 기준이 있다면 이는 클라이언트, 고객이 있느냐 없느냐일 겁니다. 저는 크루 멤버들에게 "예술가지만 클라이언트를 무시한다면 그건 실력이 없다는 방증이다"라고 말합니다. 일을 받아서 하는 경우, 그 안에서 자신의 예술을 해야 합니다. 개인의 끝없는 창작 욕구는 개인전으로 풀어야 할 것입니다. 협업도, 니즈를 맞추는 것도, 그 안에서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발휘하는 것도 모두 능력이죠. 

다만 저는 순수예술이 아닌 응용예술을 하는 사람입니다. 순수예술을 하는 분들은 작품을 완성하고 그것을 팔아야만 작업비용을 충당할 수 있죠. 클럽하우스를 하면서 순수예술을 하는 작가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분야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수익을 거두고 있는 분들은 이름난 대가인 경우가 많았죠. 반면, 실력은 있는데 젊은 작가들은 다른 일과 병행하다가 결국, 예술을 그만두곤 합니다. 그래서 예술과 비즈니스가 연계된 시스템과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향,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크루 등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리에이티브 1230도 지금 생각하고 있는 계획 중 하나일까요?

요한 : 단순히 공익적인 목적만 갖고 크루를 만든 건 아닙니다. 우선 내게 이익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이를 함께 하는 멤버들도 이득이 되어야 자연스럽게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많은 일을 의뢰받다 보니 들어오는 모든 작업을 혼자 처리할 수 없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또한, 지역 콘텐츠의 전체적인 품질이 함께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강원도에서 작업이 되겠어요? 서울에서 하는게 낫지”라는 말을 예전에 많이 들었습니다. 기술적으로, 환경적으로 지역의 한계를 벗어난 지 오래인데 인식은 아직 그대로인 경우가 많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좋은 퀼리티를 지역의 많은 작가, 활동가들이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죠. 크루 멤버들과 함께 협업하고 서로 공부, 교육하면서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해 강릉 국제 영화제, 평창 동계 올림픽 등과 같은 큰 행사를 강원 지역 예술가와 활동가들의 힘으로 치러냈습니다. 

그리고 예술가 지원과 수익 증대를 위해 스튜디오의 일부 공간을 아트팩토리(Art Factory)라는 이름으로 마련하고 미술작가 여섯 분을 초대해 작업,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레지던시처럼 관리와 대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콜렉터가 관심이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1차 목표입니다. 이후에는 작품을 관리받고 판매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예술 활동을 하는 모든 이들이 정당한 수익을 거두며 활동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여기에 있어 중요한 부분은 실력입니다. 강릉 사람이든,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건 기회는 똑같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저도 능력이 있는 분이라면 동등한 기회를 제안하고요. 저를 믿고 의뢰하신 분들에게 동료를 소개해줄 때는 능력 있는 사람을 소개해주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이고요. '나는 다른 지역에서 왔으니 기회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안타깝습니다. 자기만의 도피처에서 이유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서요. 



사진과 영상에 담기는 모든 공간이 소중하지만, 특히 눈에 띄는 공간들이 있을까요?

요한 : 우선 사무실이자 스튜디오로 사용하는 이 공간에 애정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실내 공간을 선호하기도 하고 이 건물을 처음 마주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손이 많이 가서 애착이 많이 가요. 우사였던 곳을 농기계창고로 쓰고 있었는데 제가 마주했을 적에는 기둥만 있고 간이 창고 형태로 간신히 건물 윤곽만 있었습니다. 콘크리트를 붓고 도색하면서 지금 모습을 갖춰갔어요. 앞서 말했듯이 층고가 높은 공간으로 구성해 실내 촬영 시에도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공간 자체가 제게 영감을 주고 있으니 전시회에서도 창의성과 새로운 생각을 불어넣을 수 있게 구성할까 합니다. 

스튜디오와 함께 사무실, 편집공간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편집, 편집공간이 힘들다기보다 즐거울 때가 많습니다. 일이 많을 때는 지칠 때도 있지만, 대부분 게임을 하듯이 열중에서 진행하죠. 그래서 의뢰인과 의논하는 과정에서 제가 하고 싶은걸. 최대한 반영하고 설득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제가 재밌으니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하나 있는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체도 좋고요. 덩그러니 풍경만 있는 공간을 찍는 걸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사람(人)과 사람(人)사이에서 인간(人間)관계가 생기듯 장소에 사람이 있을 때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건 유기적인 과정의 연속체이거든요. 이야기도, 공간도, 사진과 영상, 그리고 협업하는 모든 과정이 유려한 생명체처럼 이어지는 가운데 가치를 발현한다고 봅니다.



글 = 변준수

사진 = 진명근(Workroom033) 

장소 = 코리아 이미지 스튜디오(CREATIVE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