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라이프][예술가의 사무실 : Work & Art 작가 인터뷰] '붓이 닿은 모든 과정이 작품이 된다' 글씨당 김소영 서예가

20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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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물을 표현할 때 외적인 모습을 특정하거나 수식하는 단어는 많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대상을 지칭하는 말은 더 많죠. '화려하다', '수려하다', '청아하다' 등등 다양한 말로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곤 합니다. 하지만 내적인 부분과 외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단단하고 강한 느낌을 한데 아울러 표현하는 말은 적습니다. 그 가운데 '인격이나 품성, 학식, 재질 따위가 높고 빼어나다'라는 뜻을 지닌 '고매하다'는 미적인 기준 이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것에 붙이는 수식어입니다. 지난 8일 옅은 붉은빛을 띤 지붕이 인상적이었던 글씨당 한편에서 고매한 매력을 지닌 김소영 서예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예술 활동, 일 외에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해시태그

#글씨당 #Korean_한글 #한글_아이돌



글씨당 소개 문구에 있는 '글로 제시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무슨 뜻인가요?

김소영 작가(이하 '소영') : 사람들은 서예나 캘리그라피 작품을 보며 우리 생활과 조금 멀리 서서 감상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글씨를 쓰는건 우리 생활 어디서나 볼 수 있어요. 캘리그라피는 상업예술이거든요. 집 앞 빵집의 메뉴, 자주 가는 식당의 간판, 얼마 전 문을 연 가게에 쓰인 글자, 옷에 새겨진 레터링이나 패턴 등 수많은 글씨가 우리의 삶 여기저기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이곳 글씨당은 70년 정도 된 옛집입니다. 이 도시에서 우리 현대사를 온전히 담고 있는 공간이죠. 제가 하는 예술과 닮았어요. 저는 그동안 캘리그라피의 상업성과 현대성, 서예의 전통과 보존 가치 등,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두 분야를 함께 하면서 단순히 예술적 결과를 내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여러 가지를 아우를 수 있도록 시도했습니다. 거대한 붓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것도 종이에 쓰인 글씨를 넘어 과정 전체가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인생이 구분되지 않듯이 글도, 라이프스타일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상호 소통하면서 그 범위를 넓혀간다고 생각합니다. 확장성이죠. 기본을 지키고 경험하면서 삶 속에서 새롭게 소화해서 바깥으로 내보이는 모습, 제 라이프스타일이자 글씨의 본질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서 언급한 확장성을 실천하는 모습이 현재 다양하게 활동하는 작품세계라고 봐도 될까요?

소영 : 네. 맞아요. 저는 캘리그라피를 먼저 하다가 서예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역방향으로 배운 셈이죠. POP 전반을 다 다루고 있고, 그중에서 붓글씨와 붓 캘리그라피가 전공분야입니다.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은 형태라기보다 홀로 연구하고 공부해왔습니다. 그래서 대중 앞에 서고 보여주어야만 했습니다. 제가 쓰는 글과 서예, 손글씨를 증명해야 했으니까요. 큰 붓을 들고 눈앞에서 그려내듯이 선보였던 퍼포먼스들도 비슷한 이유에서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작업하면 실수도 적고 보기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대신 퍼포먼스를 통해 작품을 완성하면 앞에서 지켜보는 관객과 소통할 수 있고, 글을 적어 내려가는 과정 전체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선보일 수 있습니다. 제 호흡과 관객의 반응, 붓이 지나간 화선지 위에 살짝 먹물이 튄 부분까지 온전히 작품으로 승화되죠. 결국, 작가는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이 있을 때, 작가의 예술세계와 작품 모두 가치를 더합니다. 퍼포먼스, 수업, 전시, 작업, 그리고 SNS를 통해 많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작품을 소개하는 과정 모두가 소통이고 작업이라고 봅니다.



강릉이라는 도시는 작가님께 어떤 영감을 불러 일으키나요?

소영 : 강릉에 온 지 7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여유롭다'라는 단어가 생각나요. 한적하면서 적적하지 않은 그 느낌이 좋습니다. 제가 하는 일과 강릉의 분위기가 잘 맞아요. 바다와 산, 솔숲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조용히 골목을 걸을 때면 붓으로 글을 쓸 때처럼 차분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가끔 관광객들이 시내에 가득할 때면 그 자리를 돌아서 가기도 해요. 사람을 좋아하지만, 차분히 걷는 시간도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저의 뮤즈도 강릉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허난설헌입니다. 그의 삶, 처연함, 고난과 역경, 그 가운데 지켜온 예술 활동까지 모든 부분이 제게 영감을 줬습니다. 한때는 그의 못다 핀 예술을 이어 활동하겠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예전에 난설헌 기념관에서 전시하며 관객분들께 글씨를 그 자리에서 쓰고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난설헌 생가터 앞에 있는 풀밭에 앉아 관람객에게 글을 써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늘과 땅의 푸르름, 차분하면서 열정적이었던 난설헌의 삶과 오랜 역사가 주는 장대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장소에서 한복을 갖춰 입고 글로 관객과 소통하는 건 그 자체로 거대한 작품을 그린 기분이었습니다. 난설헌의 삶에 조금 더 다가갔던,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작업 공간이자 일하는 장소로서 글씨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소영 : 전통과 그 변용에 관한 관심이 많습니다. 글씨당에서 지내면서 어느새 저와 이 공간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가지로 표현하기보다 여러 가지 면을 담고 있는 모습이 어우러진달까요. 저는 서예를 하면서 작품 의뢰를 받는 1인 기업대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작업할 때면 제작, 마케팅, 영업, 소통 등 여러 부분을 스스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과정을 글씨당에서 하고요. 기본과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며 나가는 제 모습과 예술 작업 공간이자 일터, 사무실인 글씨당은 그런 면에서 많이 닮았죠. 이제는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하는데 좋을까요. 하나가 된 기분입니다. 글씨당이 저 자체인 거죠. 

일을 의뢰하러 오시는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글씨당은 비즈니스 공간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돈을 버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예와 캘리그라피는 현대적인 영역에서 디자인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공간에서 일하는 저는 직장인이면서 작업을 수행하는 예술가이기도 하고, 의뢰를 완성하는 기업 대표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모든 작업에 있어서 누군가의 대표 이미지이자 얼굴이 될 수 있기에 책임감을 느끼고 온 힘을 기울여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글 = 변준수

사진 = 진명근(Workroom033) 

장소 = 글씨당